독일에 어린이날이 있다는 것을 우리 아이들은 모른다. ‘혹 주변에서 어린이날이 있다고 들어본 일 있냐?’고 여러 번 물었지만 두 놈 다 금시초문이란다. 한국은 5월 5일이 어린이날이어서 이날엔 선물도 받고 행사도 많고 하루 동안 어른들이 어린이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노력한다고 이야기 해주니 모두들 한국가고 싶다고 난리다.
독일도 어린이날이 없는 것은 아니다. 동서 냉전 시대에는 동독은 6월 1일, 서독은 9월 20일 각각 다른 날, 약간 다른 이름의 어린이날을 가지고 있었으나 통일 후부터는 9월 20일을 공식적인 어린이날로 정하고 베를린과 쾰른에서 매년 기념행사를 하고 있다.
또 지역에 따라서는 여전히 구동독의 6월 1일을 기념하는 소규모의 축제들이 열리기도 한다.
분단시대의 이 날은 서독보다는 구동독에서 더 의미를 부여했다고 한다. 서독은 그 때도 어린이날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것을 보면 어린이의 권리를 찾아주기 위한 상징적인 행사가 필요 없을 정도로 어린이는 지금처럼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보호받고 자랐음에 틀림없다.
사실 생각해보면 독일은 1년 365일이 모두 어린이날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어린이는 다양한 선택으로부터 우선권을 가지고 있으며, 모든 사회보장제도의 최우선 혜택을 누리고 있다. 어디로 보나 이 사회에서는 아이가 어른보다 위에 있다.
작은 아이가 아직 유치원을 다니고 있던 몇 년 전의 일이다. 유치원 앞을 지나던 승용차가 길을 건너려는 아이와 엄마를 미처 보지 못해 앞에서 급정거를 했다. 나이가 70정도 되어 보이는 할아버지가 차에서 내려 미안하다고 쩔쩔매며 사과 하고 있는데도 아이 엄마는 많이 놀란 것인지 목청 높여 화를 냈다.
“당신은 어린아이가 길을 건너려는 것이 안보여요? 아이예요. 아이! 아이가 지나가고 있단 말이에요. 그리고 여긴 유치원 앞인 데 어떻게 그렇게 조심성 없이 달릴 수가 있죠? 정말 이해할 수 없네요.”
물론 좀 놀라기는 했겠지만 고의로 그런 것도 아니고 속력을 냈던 것도 아닌데, 2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젊은 엄마는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두 팔을 올렸다 내렸다하면서 호되게 노인네를 나무라는 것이었다. 마치 ‘어디 감히 아이가 지나가는데.....’라는 뉘앙스로 몰아붙이기 시작하는데 옆에 함께 서있던 내가 민망해 얼굴이 붉어질 정도였다.
만일 우리나라 같았으면 잘잘못을 떠나서 ‘어디 감히 젊은 것이 어른한테 목청을 높이고 있어! 넌 어미 애비도 없냐?’부터 나왔을 텐데 자신이 분명 잘못했다고 생각했는지 그 할아버지 얼굴이 벌개져서 꿀 먹은 벙어리처럼 당하고만 있었다.
그 비슷한 경험을 나도 한적 있다. 크리스마스를 즈음한 때여선지 그날따라 시내는 인파로 발 디딜 틈 없이 복작거렸다. 어찌어찌하다보니 뒤에 있는 아이를 살피지 못하고 뒷걸음질 치다가 밀쳐서 넘어뜨리고 말았다. 뒤에 눈이 달린 것도 아니니 분명 고의로 그런 것은 아님에도 변명도 못하고 꼬박 그 자리에서 몹쓸 사람이 되고 말았다. 아이를 데리고 있는 사람이 ‘아이예요. 아이!’라고 따지면 실수로 했건 고의로 했건 무조건 입을 다물어야 한다. 잘못하다가는 더 몰상식한 사람으로 몰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 나라에서는 어디를 가나 어린이는 상전이다. 한국에 비하면 그것도 공부라고 숙제만 조금 많아도 ‘숙제 때문에 아이들이 놀 시간이 너무 없다.’는 둥, 아이들에게 지금 배우는 내용이 너무 어려워 스트레스 주는 것은 아니냐는 둥, 학부모회의 시간 마다 꾸어다 놓은 보리자루처럼 앉아 있는 한국 엄마 심심할까 별것 아닌 주제에 왜 그리도 열들을 올리는지.
그렇게 독일 부모들의 고민은 지금보다 아이들에게 더 많은 자유를 주는 것이다. 더 많이 놀게 하고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보호해 주는 것, 그것이 매일의 생각이다 보니 어린이날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
한국엔 지금 ‘5월은 어린이날’이라 정해놓았는데도 황금 같은 주말과 어린이날을 사이에 두고 중간고사기간을 정해서 아이들을 잡아두는 학교도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잔인한 중간고사 날짜’다.
그러면서 하루 동안 좋은 선물 사주고 맛있는 것 푸짐하게 먹여주면 어른들의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것, 분명 앞뒤가 맞지 않는 연극이다. 그래도 그나마 어린이날이라도 있어야 하루라도 아이들을 풀어주기 위해 노력 할 것이니, 우리나라에서 어린이날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한국은 언제나 독일처럼 어린이날이 따로 필요 없는 나라가 될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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