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누리는 지혜/책이야기

까만새, 이오덕

주인공을 찾는 아이 2009. 3. 9. 00:21

두손으로

 

두손으로 낯을 쓰윽쓰윽 씻는다

야, 얼마나 쉽게 씻겨지나.

얼마나 편리한 손이냐.

한쪽 손으로 겨울 물을 찍어 바르던

그것은 어제 아침이었지.

조그만 손가락 하나 다쳐도 이러한데

온통 팔 하나를 못 쓰면 어찌 되나?

다리 하나를 못 쓰면?

두 다리가 다 없어 손이 발 노릇 하는 사람,

짐승같이 기어다니는 사람을

언젠가 거리에서 보았다.

아버지 얘기를 들으니

두 팔이 다 잘린 사람도 있다더라.

그 사람은 어떻게 밥을 먹을까?

꿈틀꿈틀 움직이는 벌레같이 살아갈까?

세상엔 불행한 사람이 너무 많다.

제 잘못으로 병들고 다치는 수도 있지만,

억지로 전쟁터에 끌려가서 그렇게 되고,

많은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위해

위험한 굴속에 들어가 일하다가 그렇게 된다.

밤새도록 기계 앞에서 손발을 움직이다가

잠깐 조는 사이에도 그렇게 된다.

병원에도 못 가고, 약도 못 쓰고,

죽기만을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기가 막힐까? 얼마나 슬플까?

그 사람의 식구들은 얼마나

세상이 원망스러울까?

그러나 나는 성한 몸,

이렇게 두 손으로 낯을 씻는다.

얼마나 쉽게 씻겨지나?

얼마나 고마운 손인가?

손가락을 쫙 펴 본다.

싱싱하게 뻗은 나뭇가지 열 가닥.

손바닥을 동그랗게 모으면

그릇이 되어 하늘을 받들고,

흔들어 본다, 깃발처럼.

꽉 쥐어 본다.

바위 같은 주먹이다.

아, 이 손

이 손으로 나는

무엇을 할까?

무엇을 해야 할 텐데,

무엇을 꼭 해야 할 텐데......

 

아직은 불안정하긴 하지만 교육철학을 세우는 데 가장 많은 도움을 준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이오덕 선생님이다. 그분의 초창기의 글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적어서 찾아 다니곤 했는데 인천 배다리의 아벨서점에서 처음 듣는 제목의 책 '까만새'를 집어 들게 되었다. 

글쓰기 회지(2004년 7.8월호)에 따르면 이오덕 선생님의 움직임을 크게 '참교육운동'-'어린이문학평론'-'우리말,글 살리기' 세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오덕 동시모음1 '까만새'는 이들보다 훨씬 오래전에 우리들 곁에 왔다. 

원래 1974년에 나왔고, 1981년경에 3/5가량을 다시 실어서 새로운 시집을 냈지만 2003년 3월부터는 이 책을 더 못내게 해서 1974년판을 다시 찾아 2005년 5월에 다시 내게 된 책이었다.

 

사실 이오덕 선생님은 글을 쓰고 싶었고 우리 어린이 문학의 큰 어른 이라 할 수 있는 이원수 선생님과의 관계도 깊고 실력도 있어서 몇번에 걸쳐 좋은 글('까만새'의 추천글을 써주시기도 했다)을 내게 되었다.

그 중에 하나인 '까만새'는 아이들을 위해 선생님이 쓰신 동시모음집이다.

하지만, 초창기선생님의 글들은 현재를 살아가고 있고 그런 경험이 부족한 나로서는  사실 마음에 닿지 않았고 심지어는 재미도 느낄 수 없었다. 농촌을 그리거나 조금은 추상적이지 않으가 싶어서 그런 것 같다.

그렇게 책이 끝나가나 싶었는데 '두손으로'를 만나게 되었다.

1970년대 우리의 노동 현실이 농촌이나 도시나 할 것 없이 비참했다는 것이 눈 앞에 펼쳐지듯이 그려지는데 가슴이 터-억 막혀왔다. 1970년대에서 존재할 것 같은 사실이 21세기라는 2009년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아니, 세계 10위권에 진입한 우리의 경제에서도 발생하는데 우리보다 법제도도 갖춰지지 않았고 어렵게 살고 있는 세계의 여러 나라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 시 한편이 재미없고 마음에 닿지 않았던 '까만새'를 내게 다시 보내주었고 동시모음집 '까만새'에 대한 글을 쓰게끔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