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목욕탕 한 구석에 놓인 화분 하나
물 흠뻑 머금으라고
어머님께서 손수 내 놓으셨을 화분 하나
우리 딸 첫 월경 소식에
남편이 함께 기뻐하며 사 들고 온 화분 하나
놓여 있다
그 화분 보다 보면
일곱달 반 만에 1.5kg으로 태어나
친할머니, 외할머니 부여잡고 울게 만들었던 딸이
이만큼 자랐구나 싶어 대견해진다
바쁘게 돌아다니는 엄마 만나
일찍부터 시근 들어버린 딸이
정말 이만큼 자랐구나 싶어 고마와진다
그런데 딸아, 알고 있니?
너 태어나 딸이라던 말 의사한테 듣던 순간
네가 딸이라서 마음이 짠해지더라
손톱만큼도 서운하거나 아쉬워서가 아니라
아들이라면 겪지 않아도 될 짐들이
세상에는 아직도 너무 많다는 사실이
작은 너를 안고 참으로 실감나더라
하루에 877건, 3분에 두 건씩
강간 사건이 일어나는 곳
장애 소녀가 첫 월경을 하면
그 부모가 제일 먼저
그 딸에게 불임수술을 시키는 곳
여기가 네가 살아가야 할 세상이라는 사실이
이 곳이 네가 헤쳐나가야 할 조국이라는 사실이
작은 너를 안고 참으로 실감나더라
네게 작은 화분 선물하고는
흐뭇해하던 아빠 얼굴 기억하렴
그리고 그 화분 쑥쑥 잘 자라는 것처럼
너도 그렇게 거침없이 행복하게 자라렴
그리고 화분 받지 못한 네 친구들 기억하렴
그 화분 잘 자라도록 물 주고 햇볕 보이는 그 마음
그대로 받아
화분 받지 못한 네 친구들과 함께 하렴
그리하여 그 친구들과 함께 행복하기를
그런 세상 얼른 오기를
* 성장소설 또는 여성소설 <환절기>를 읽고.
박정애 지음, <우리교육>출판.
출처 : 연애편지
글쓴이 : 바람숲 원글보기
메모 :
'문화를 누리는 지혜 > 책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런 도서관 풍경 참좋다. (0) | 2009.04.13 |
---|---|
어린이 도서연구회에 있는 예쁜 이미지들 (0) | 2009.04.12 |
인터파크도서 헌책방 (0) | 2009.04.11 |
까만새, 이오덕 (0) | 2009.03.09 |
아다치에서 고다니로, 하이타니겐지로의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을 읽고 (0) | 2009.0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