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누리는 지혜/책이야기

[스크랩] 딸

주인공을 찾는 아이 2009. 4. 9. 11:38

 

 

딸에게

 

 

목욕탕 한 구석에 놓인 화분 하나

물 흠뻑 머금으라고

어머님께서 손수 내 놓으셨을 화분 하나

우리 딸 첫 월경 소식에

남편이 함께 기뻐하며 사 들고 온 화분 하나

놓여 있다

 

그 화분 보다 보면

일곱달 반 만에 1.5kg으로 태어나

친할머니, 외할머니 부여잡고 울게 만들었던 딸이

이만큼 자랐구나 싶어 대견해진다

바쁘게 돌아다니는 엄마 만나

일찍부터 시근 들어버린 딸이

정말 이만큼 자랐구나 싶어 고마와진다

 

그런데 딸아, 알고 있니?

너 태어나 딸이라던 말 의사한테 듣던 순간

네가 딸이라서 마음이 짠해지더라

손톱만큼도 서운하거나 아쉬워서가 아니라

아들이라면 겪지 않아도 될 짐들이

세상에는 아직도 너무 많다는 사실이

작은 너를 안고 참으로 실감나더라

 

하루에 877건, 3분에 두 건씩

강간 사건이 일어나는 곳

장애 소녀가 첫 월경을 하면

그 부모가 제일 먼저 

그 딸에게 불임수술을 시키는 곳

여기가 네가 살아가야 할 세상이라는 사실이

이 곳이 네가 헤쳐나가야 할 조국이라는 사실이

작은 너를 안고 참으로 실감나더라

 

네게 작은 화분 선물하고는

흐뭇해하던 아빠 얼굴 기억하렴

그리고 그 화분 쑥쑥 잘 자라는 것처럼

너도 그렇게 거침없이 행복하게 자라렴

그리고 화분 받지 못한 네 친구들 기억하렴

그 화분 잘 자라도록 물 주고 햇볕 보이는 그 마음

그대로 받아

화분 받지 못한 네 친구들과 함께 하렴

그리하여 그 친구들과 함께 행복하기를

그런 세상 얼른 오기를

 

 

 

 

 * 성장소설 또는 여성소설 <환절기>를 읽고.  

 박정애 지음, <우리교육>출판.

 

출처 : 연애편지
글쓴이 : 바람숲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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