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고다니는 결혼과 동시에 초등학교에 교사가 되었다.
처음시작하는 교사생활을 1학년 반 아이들과 즐겁게 시작하려 했지만 엉망이 되었다. 데쓰조때문이었다.
데쓰조는 처리장에 사는, 그래서 기본부터가 문제인 녀석인데 멀쩡한 개구리를 밟아 죽이기도 하고, 후지미를 집기병으로 후려쳐 후지미를 다지게하기도 하고 고다니의 손을 물기도 했다.
그런 데쓰조를 맡아야 하다니 고다니의 교직생활은 시작부터가 불행이다.
아다치..
평소에 하고다니는 거나 소문에 의하면 가까이 해서는 안되는 선배교사이지만 글쓰기에 일가견이 있다길래 아이들의 작품을 보여줬더니 데쓰조의 작품에 흥미를 보였다.
아다치선생과 고다니선생은 처리장근처에 사는 아이들의 가정방문을 나갔다.
아이들은 아다치를 친구처럼 대하고 무한한 신뢰를 보낸다.
고다니는 어떤 교사가 정말 아이들을 위한 교사인지 고민이 되었다.
당장 아다치선생님처럼 될수는 없지만 데쓰조가 조금이라도 변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서 고다니 스스로가 데쓰조를 알기 위해 노력했다. 파리와 관련한 책을 사보기도 하고 데쓰조가 연구활동을 할 수 있도록 가르쳐주었다.
다행히도 데쓰조는 점점 안정된 모습으로 학교에서 생활했다.
3학기가 시작하자 미나코가 전학왔다. 미나코는 11월경에 특수학교로 전학을 가기전에 잠시 머물다 가기로 했다.
고다니는 미나코의 좋은 담임이 되기로 마음먹었지만 마음처럼 쉽지는 않았다. 다행히도 준이치가 좋은 안을 내어서 미나코 당번를 정해 하루씩 함께 놀아주기로 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미나코의 뒤를 따라다녔지만 데쓰조는 되려 자신만의 방식으로 미나코와 어울려주었다.
아이들은 미나코를 좋아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자신의 친구로 여기가 되었만, 미나코는 특수학교로 간다.
데쓰조가 연구한 내용이 화제가 되어 지역 일간지에 실리고 한 식품업체로부터 파리문제를 해결해달라는 따위의 부탁을 받으며 평온하게 지내던 처리장 근방 아이들에게 처리장을 이전한다는청천병력과 같은 소식이 날라온다.
고다니,아다치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처리장 이전싸움을 한다.
comment
내게 일본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고, 일본을 가보게 싶게 만들고, 교육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고 교육자로 아이들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준 일본 사람이 있다.
하이타니 겐지로 선생님.(그는 분명 선생님이다.)
2000년경에 처음 들었지만 그의 글을 처음 접한 것은 2004년경이었던 것 같다.
뛰엄 뛰엄 글을 읽다고 2004년 말경 그에게 빠져 그가 쓴 책들을 미친듯이 읽었던 것 같다.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모랫밭아이들, 태양의 아이들, 내가 만난 아이들, 너는 닥스 선생님이 싫으냐, 우리 가족, 시골로 간다 따위를 읽으며 탄복하고 또 탄복했다.
그리고 그의 책대로 아이들을 대하고 좋은 선생님이 되고자 했다. 물론 실패했지만...
2006년 11월 28일
우연히 인터넷을 하다가 하이타니 겐지로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보았다.
당시 난 하이타니 겐지로 선생님이 병에 걸렸다는 사실도 몰랐다. 그래서 내 스스로에게 '넌 좋아하는 사람이 그렇게 아팠는데 그런 것도 모르면서 좋아한다는게 말이되냐?'라는 자책을 했었다. 그리고 그가 누워 있는 곳에 가서 그와의 마지막을 어떤 식으로도 했으면 ....이란 생각도 했다. 물론 그런 마음도 시간이 지나면서 안개사라지듯이 사라졌지만...
"선생님은 아다치 선생님 닮았어요."
난 아이들에게 하이타니 겐지로의 책들을 자주 권했다. 그 중 아이들이 쉽게 읽고 좋아하는 책은 단연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다.
책을 손에 잡은 아이들은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이야기지만 고다니 선생님, 데쓰조, 아다치 선생님, 미나코, 바쿠 할아버지 그리고 이사오와 고지 그리고 준을 비롯한 처리장 아이들이 만들어가는 이야기에 순식간에 빠져들고 읽은 후에도 한동안은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경험했다.
그리고 몇몇 아이들은 수업시간에 불쑥 이런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 책에 나오는 사람이랑 닮았어요."
"누구?"
"아다치 선생님요."
"왜?"
"뭔지 모르겠지만 특이한게 비슷해요."
"그게 뭔데?"
"음.... 시험싫어하는 거나.. 가정방문하는거나.. 뭐 여러가지요..."
그런 소리를 들을 때 마다 사실은 기분이 좋다.
아다치가 누구인가?
초보 선생 고다니에게 바른 모습으로 아이들을 대하고 사랑하도록 몸소 보여주는 선구자 아닌가?
그 말을 자주 듣기 위해서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를 계속 읽히고 있다.
민주적인 학교, 교원평가를 막는 작은 실천! 가정방문
교사가 되면서 누구나 생각해봤을 로망이 있다면 가정방문가서 학부모와 정답게 이야기 나누기이다. 보다 나은 교육활동을 위해 수업 외에 따로 아이의 가정을 방문해 학부모를 만난다는 것은 누가 봐도 정당하고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 활동이지만, 실상은 교사나 학부모들 모두 가정방문을 어려워하거나 귀찮아한다는 것이다.
몇몇 교사와 학부모들의 잘못된 교육관에 의해 옳지 않은 행위가 오고가고(예를 들면 촌지) 관행인것처럼 여겨지면서 부터이다.
‘가서 욕먹고 오해받느니 되려 안가는게 낫다’라는 인식이 교사사이에 퍼지고 ‘가정방문을 오면 뭔가 내놔야 할 것 같고... 차라리 안오는게 낫다’라는 인식이 학부모 사이에 퍼지면서 이제는 가정방문을 나가는 교사가 희귀종인것처럼 취급받고 있다.
몇몇 교사들은 끊임없이 가정방문을 나가 아이의 속사정을 알고 이후 아이에 대한 계획을 세우긴 하지만 이제 우리 사회에서 학부모를 믿는 교사도, 교사를 믿는 학부모도 찾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학부모의 학교 참여를 못마땅하게 여기거나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몇몇 곳에서는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하는 학부모들이 행정책임자의 들러리가 되어 거수기로 전락한 경우도 있다.
교사 중 몇몇은 아이들을 방치하고 자기 편한대로만 하는 사람이 있어 그런 교사들은 교육계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마음으로 교원평가를 찬성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몇몇 곳에서는 아이나 학부모로부터 매맞는 교사들이 생겨난 경우도 있다.
어쩌다가 학부모와 교사의 관계가 이렇게 되었나?를 이야기하기에는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가정방문은 학부모와 교사와의 관계를 올바르게 세우고 바른 교육을 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 중에 하나라는 것이다.
그런측면에서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의 아다치와 고다니 선생의 가정방문은 모범답안과 같다.
가정방문을 통해 아이들의 속사정뿐만 아니라 교육활동에 적용시키기 위해서 노력하게 되고 나아가서는 지역사회로부터 권위를 인정받는(또는 지역사회 문제까지 함께 해결하는) 구성원이 된다.
이런 관계가 지속된다면 거수기로 전락한 학교운영위원회는 민주를 실천하는 총체가 되고, 바른 생각을 갖은 교사를 걸러내는 교원평가를 찬성하는 일은 없게 되지않을까?
특수한 아이들이 있는 특수한 교실
학교의 몇몇 학급에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발달이 더딘 아이들이 있다. 분명 그 아이들이 잘못한 것이 아니지만 마치 잘못되거나 한 것처럼 그 아이들을 대한다. 그것은 어른 뿐만아니라 아이들도 마찬가지인데 아이들에게 배려하는 마음을 알게 해준다면 다른 사물이나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고 대하게 된다.
물론, 사회의 전반적인 모든 것이 그리 흘러가면 더욱 오래동안 되어지고 결국 몸에 베이게 되어 자연스레 행동으로 나오게 될 것이다.
게다가 이는 어리면 어릴수록 스스로 터득하고 몸밖으로 실천하기도 한다.
2학년 아이들을 가르칠 때다.
우리 반에는 반응성 애착장애를 가진 친구가 있었는데 아이들은 그 녀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지나가면서 다른 아이의 물건을 아무렇지도 않게 가져오고 툭툭치고 때리고 하니 좋아할리 없다.
그래서 녀석을 학교전체를 돌아야하는 심부름을 시키고 반 아이들과 그 녀석과 잘 지내기 위한 방안을 토론했다.
시작부터 시끄러웠다.
"수업시간에 소리를 질러서 집중을 할 수가 없어요"
"이유없이 막 물어요"
"제 공책을 막 찢어요"
"연필을 막 가져가요"
"방구를 막 뀌어서 냄새가 나요"
아이들은 때라도 된 것처럼 거칠게 녀석의 잘못된 점을 토해놓았다.
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싶어서 이야기를 정리하려고 할 때 쯤 한 여자아이가 손을 들었다.
"선생님 내일 짝을 바꾸잖아요.제가 00랑 짝을 해볼께요. 아이들이 00에 대해 나쁜 말을 하는게 가슴이 아파요."
너무 고마웠다.
그 여자아이는 힘든 와중에도 녀석을 잘 돌봐줬고 다른 아이들도 차츰 녀석을 좋아하게 되었다.
놀러나갈때도 데리고 나가고 밥도 같이 먹으러 가고 신나게 놀아줬다.
심지어는 여자아이는 녀석을 나무라는 나에게도
"선생님 조금 더 친절하게 대해주세요. 그래야 어른이죠."
그런 여자아이의 노력 덕이었을까 녀석은 차츰 좋아졌고 2학기를 마칠 때 쯤에는 수업도 많이 따라올 수 있게 되었고 다른 아이들도 녀석을 다른 아이들 대하듯이 어울리고 장난도 치며 놀았다.
마치 데쓰조를 많은 아이들이 이해하고, 미나코를 사랑하게 된 것처럼 우리 반 아이들이 그리 행동한 것이다.
데쓰조와 미나코를 아이들이 치료해주고 싶었지만(같이 놀아주고 학급의 성원으로 받아주었지만) 정작 더 큰 치료를 받은 것은 반의 아이들인 것처럼 우리반 역시 그녀석을 치료해주기 위해서 놀기시작했지만 더 큰 치료를 받은 것은 반의 아이들과 학부모였다.
형식에 맞게 가르치기, 자유롭게 가르치기
경력이 낮은 교사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 중 하나가 수업 좀 잘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임상장학이라고 해서 저경력교사(일반적으로 1급정교사가 아닌 2급정교사 상태인 교사)를 대상으로 수업을 구조화하여 진행하도록 한다. 즉, 학교근무경력이 많은 교장, 교감(학교에서는 통상적으로는 교장선생님, 교감선생님이라고 하지만 법적 명칭은 교장, 교감이므로 이곳에는 교장, 교감으로 부르겠다.)으로부터 학습목표에 효과적으로 도달했는지 여부를 수업전에 수업지도안을 검토받아 수업을 진행하는 것을 말한다. 수업이 끝나고 난 후 교사가 얼마나 짜여진 순서에 맞게 수업을 잘 했는지를 중심으로 수업협의를 하곤 한다. 물론 협의시간에 짜여진 순서에 맞게 수업을 잘 한 것보다는 아이들의 반응을 중심으로 이야기해주는 교사들도 있지만 그 수가 그리 많지 않다.
그런 수업의 장점은 수업이 끝난 후 학습목표에 효과적으로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아이들이 그 학습목표에 효과적으로 도달했는지 확인할 길이 없으며(그것이 형성평가를 포함한 시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는 견해가 우리 교육의 주류이지만) 설령 점수가 높게 나왔다고 해서 학습자가 잘 알고 있다고 보는 것은 이미 주입식 또는 선다식 교육으로 세계 무대에 도전해 세계인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현실이 바로 그 답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난(2008년) 8월 일본에 다녀왔을 때 그곳에서 공부하고 있는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일본 아이들은 한국 아이들이 왜 그렇게 달달 외우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고 목메다는 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런 것들은 이미 컴퓨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 아이들은 그럴 시간 있으면 더 많이 놀고, 책보고, 경험을 쌓으러 다닌다는 것이다. 그게 현재 우리와 일본의 차이다”
하- 하고 헛웃음치고 그 상황을 끝냈지만 문제는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다는 것이다. 21세기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창의적인 면을 들여다보자.
작년 9월경 아내와 종로에 있는 일본문화관에서 우리 나라 아이들과 일본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보고 아내와 나는 중요한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잘그린 그림은 모두 우리 나라 아이들의 그림이었고 뭔가 비어 있는 듯 하고 부족해 보이는 것들은 모두 일본 아이들의 그림이었다. 그런데 우리 나라 아이들은 주제에 맞는 똑같은 그림을 그렸다면 일본 아이들은 제각각 다른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다. 물론 경험을 똑같이 해서 그렇게 그렸다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경험에 의한 그림이라는 인상보다는 분명 머릿속에서 개념화되어진 것들을 도화지에 그린 것으로 짙었다. 그건 나 뿐 아니라 같이 갔던 아내 역시 그렇게 느꼈다고 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
바로 수업시간에 가르치는 교사도 배우는 아이들도 자유로운 상황과 마음에서 가르치거나 배울 수 없기 때문이다.
저경력 시절부터 교사들은 구조화된 수업이 바른 수업이며 그럴 때 효과적으로 학습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라고 배우고 구조화된 수업을 하지 못하면 교장이나 교감으로부터 혼나고 좋은 수업을 하지 못했다고 평가받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아다치에서 고다니로
분명 아다치는 좋은 교사이다. 하지만 그는 이미 어느 정도 완성되어 있는 교사이다. 그래서 그는 다른 교사들이 아이들을 함부로 대하거나 교육적이지 않은 행위를 할 때는 당당히 맞서 싸우는 교사이다.
그런 아다치를 보고 난 흠모하기까지 이르렀고 아이들이 아다치를 닮았다고 했을 때 너무 좋아했다.
하지만, 다시 읽은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에서는 그런 아다치보다는 고다니가 더 마음에 닿았다.
아직 아다치처럼 되지 못한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늘 노력하고 아이들을 이해하려는 고다니의 마음이 느껴져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고다니는 분명 내가 따라 배워야 하는 교사의 모습이다.
아이들에게 한없이 친절하고 배움이든 아이들을 위한 마음이든 끊임없이 노력하는 좋은 교사이다.
아다치보다는 고다니가 훨씬 가까워야 하는 존재라는 생각마저 들기도 했다.
올해 새로운 아이들을 만난다.
어떤 아이들 될지 모르지만 녀석들에게 고다니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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