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누리는 지혜/책이야기

기다리는 것은 멈춰서는 것이 아니야. 기다리는 것은 걸어가는 거야

주인공을 찾는 아이 2010. 11. 5. 04:22

 

 

 

 

 

기다리는 것은 멈춰서는 것이 아니야. 기다리는 것은 걸어가는 거야

낙타굼(박기범, 낮은산)

 

아침활동시간에 30분 아침독서를 하면서 10분정도 집중하며 버틸 수 있는 6학년인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우리 반은 10분은 아이들 스스로 책을 읽고 10분정도는 동화구연처럼은 아니지만 내가 책을 읽어 준다. 그리고 사이사이에 5분가량씩 자기의 느낌이나 생각 그리고 알게 된 내용을 쓴다.

내가 읽어주는 책들은 시간의 제약이 있어 보통은 10분 이내에 읽어줄 수 있는 그림책이 대부분이지만 가끔은 1 ~ 3주정도의 시간을 갖고『우리누나(오카슈조, 웅진주니어)』, 『바보온달(이현주, 창비)』,『 나 이제 외톨이와 안녕할지 몰라요(하이타니 겐지로, 사계절), 『소나기밥 공주(은이정, 창비)』따위의 동화책도 읽어준다.

아이들은 의외로 선생님이 읽어주는 책읽기를 좋아하고 몰입을 잘한다. 그래서 느낌이나 알게 된 사실을 쓰라고 하면 평소에는 두세줄 쓰는 것도 어려워하는 아이들이 공책 반쪽도 쉽게 쑥쑥 써내려간다. 그 순간 아이들이 얼마나 대견스러운지 모른다. 늘 그랬으면 좋으련만 뜻대로 쉽지 않은 게 아이들이다.

이번에 『낙타굼(박기범, 낮은산)』은 1주일정도 읽었다.

『낙타굼』을 처음 읽는 날 아이들에게 표지와 작가의 말만 들려주고 내용을 예상해보라 했다.

‘낙타가 사막을 여행하는 것’, ‘아이가 낙타로 변신하는 이야기’, ‘작가가 낙타로 변신하는 이야기’라는 등 조금은 엉뚱한 답도 나왔다. 물론 ‘낙타굼이라는 별명을 가진 아이의 이야기’라며 정답을 맞춘 아이도 있었다.

주인공 구름이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하는 바람에 작은 구멍가게를 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산다. 구름이의 별명은 낙타굼이다. 교장선생님께서 ‘한 굼’이라고 이름을 알아듣는 바람에 친구들이 ‘굼’이라 놀려댔는데 커다랗고 튀어나온 눈, 아랫 입만 우물거리는 버릇, 구부정한 자세가 낙타를 닮아 졸지에 ‘낙타굼’이 된 것이다.

구름이는 늘그막에 ‘혹’이 생겼다며 부모 고생시키는 구름이 아버지를 나무라는 할아버지 친구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구름이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자신 때문에 고생하는 것 같아 괴롭기만 하다. 학교를 마치고 바라본 하늘에 구름모양의 낙타를 본 구름이는 진짜 낙타무리에 섞인 것처럼 낙타들과 여행을 간다.

구름이는 지혜로운 어린낙타를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구름이가 어린낙타에게 ‘사막을 걸으며 기다리는 것이 지겹지 않냐’고 물었다.

어린낙타는 “기다리는 것은 멈춰서는 것이 아니야. 기다리는 것은 걸어가는 거야”라고 한다.

‘혹 때문에 불편하지 않냐’고 물었다. 어린낙타는 구름이의 귀에 대고 "언제나 중요한 건 한걸음 한걸음이야. 우리 등에는 혹이 있어 자칫하다가는 기우뚱 중심을 잃기가 쉽다고…걱정은 마. 우리를 지켜주는 것도 그 혹일 테니까" 라는 말과 "너는 누군가의 혹이 아니야. 너는 스스로 혹을 짊어지고 걷는 낙타야. 그걸 잊지마."라고 속삭이며 힘을 북돋아준다.

할아버지 할머니 역시 구름이는 ‘혹’이 아니라 ‘선물’이라며 더욱 열심히 살자고 한다.

『낙타굼』을 다 읽고 난 후 아이들이 글을 썼다.

「처음 구름이의 얼굴에서는 미소를 볼 수 없었는데 마지막에 환하고 예쁜 눈을 볼 수 있어서 너무 좋다」, 「구름이가 불행하지 않고 친구들과 함께 잘 어울릴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나도 어린낙타와 같은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도 동물로 별명을 지어봤으면 좋겠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구름이를 혹이라 여기지 않고 선물이라 여겨서 다행이다」,「비록 행동은 굼뜨지만 축구를 잘하는 모습은 나랑 같다」, 「어린낙타가 ‘기다리는 것은 멈춰서는 것이 아니야. 기다리는 것은 걸어가는 거야’라고 했을 때는 가슴이 멎는 줄 알았다」

아이들의 쓴 글을 소리내어 다 읽어줬다. 아이들의 얼굴에는 따뜻함이 베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