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누리는 지혜/책이야기

이땅의 소나기밥공주를 위하여, 소나기밥 공주, 이은정, 창비

주인공을 찾는 아이 2009. 11. 23. 10:36

 

공주는 하루에 한끼만 먹는다. 친구들은 그런 공주를 보고 늘 깜짝놀라고 선생님은 소나기밥공주라고 한다.

하지만, 학교에서 한끼먹는게 다인 공주에게 별명은 신경쓸 게 아니다.

가끔 그러시긴 하지만 아버지가 며칠째 들어오시지 않는다.

알고보니 술을 많이 드셔서 재활원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물어물어 겨우 아버지가 있는 재활원에 갔지만 나이가 어려 만날 수 없어 편지 한 장 써 놓고 왔다.

주머니 털털 털어나온 560원을 갖고 가게에 가 콩나물 560원어치 사가지고 들어오는 길에 202호집 팽씨 아주머니네 것 물건을 가로챈다.

냉장고에 넣어놓고 먹지만 마음 편할 날이 하루도 없다. 주인집 김씨 아저씨도 집요하게 추적해온다. 결국 나쁜 짓을 했다는 죄의식때문에 음식을 먹어도 제대로 소화를 시키지 못한 공주는 급체를 해 문앞에 쓰러진다.

팽씨 아주머니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하고 마음이 편해진 공주.

6개월동안 재활원에 있으면서 건강해져 나가겠다는 아버지의 편지도 왔다.

 

늘어나는 우리 시대의 공주

1960~70년대에나 존재해 이제는 TV로만 볼 수 있을 것 같았던 결식아동의 수가 IMF때보다 3배이상 늘어났다. 그 수는 45만명이나 된다고 한다.

국민1인당 총생산액은 전년도보다 떨어지긴 했지만 1만 7천 달러를 한다라고 하는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1980여년 저임금 호황시대의 효과는 199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급격하게 떨어져 1997년 IMF를 거치면서는 저임금 호황시대의 효과는 눈씻고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오히려 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은 1960~70년대로 곤두박질쳤다. 반면 물가는 그에 비해 수백배이상 올랐다.

게다가 안정적인 일자리마저 경영의 효율성, 선진화라는 이름하에 계약직, 비정규직으로 바뀌었다. 비싼 임금을 줘야 하는 남성인력대신 싼 임금을 줘도 열심히 일하는 여성인력이 많아지는 시대인 것이다. 불안정해진 가정으로 인해 이혼하는 가정이 늘어나고 어느 한쪽이라도 먹고 살만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힘든 상황, 즉 모두가 먹고살기에도 빠듯해진 상황이 된 것이다.

한달에 120만원밖에 받지 못하는 인구가 정부추산으로도 575만명이 넘고 민간추산으로 900만명을 훌쩍 뛰어넘은 현재. 우리 시대에 하루에 한끼밖에 못먹는 결식아동의 수가 늘어난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는 가정 경제의 붕괴를 비춰주는 또 다른 지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900만명의 인구가 머금고 있는 가족의 수를 3명이라 할 때 2700여만명, 우리 사회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최저임금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연한 결과이겠지만 이런 사회에 공주와 같은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과연 우리 시대의 공주와 같은 아이들을 구원해줄 구원투수는 있는 것인가?

 

생활력? 살기 위한 몸부림

엄마는 집을 나간지(아빠와 이혼한지) 5년이 넘었다.

그래서일까 또래 아이들과 달리 공주는 생활력이 강해보인다. 생활력이 강해보이는 공주의 모습은 아버지없이도 혼자 생활해내는 모습에서도, 현미네 집에서 현미엄마보다 음식을 더 잘해보일 때도 나타난다.

하지만, 공주가 아버지없는 어두컴컴한 반지하 방에 혼자있기가 무서워 텔레비전을 켜놓아야 하는 상황이,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딸을 반가이 맞이해주는 현미 엄마를 보면서 단란한 가정을 부러워 하는 상황이 생활력이 강해보인다라고 하면 우리 주변에는 어쩌면 45만명의 어린이가 결식아동들이 그렇게 보일 수 있다.

그들은 생활력이 강해보인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아등바등 몸부림치는 것이다.

 

정당한 자비로움 팽씨 아줌마

억척스럽고 무서운 202호 팽씨 아줌마, 세를 올려내야만 기름보일러를 가스보일러로 고쳐주는 고약한(?) 집주인 김씨 아저씨, 공주의 죄명을 한껏 뒤집어 쓴 104호 아저씨 모두 공주와 같은 단독주택에 사는 사람들이다.

공주는 팽씨 아줌마가 무섭다.

살은 뒤륵뒤륵 쪘고 얼굴은 탐욕스러운 살이 가득차고, 머리는 뽀글뽀글 파마를 했고 키는 작고 배는 나왔을 것 같은 모습의 팽씨 아줌마는 혼자 살면서 딸을 키운다. 이 험한 세상을 살기위해서 일까? 조금은 지독스러운 모습으로 그려진다.

배달되지 않은 물건에 대해 변상을 요구하러 가서 덤으로 몇몇 사은품을 요구할 때, 집주인 김씨가 보일러를 가스보일러로 교체해주면서 여러집이 했으니 사은품을 요구할 때 팽씨 아줌마의 지독스러움에 억척스러움이 묻어난다. 그 지독스러움과 억척스러움에 잘못을 고백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공주는 쓰러지고 팽씨아줌마는 지독스러움 대신 자비로움을 보여준다. 물론, 팽씨 아줌마의 자비로움은 정당한 자비로움이었다.

물건을 가로챈 것에 대해 가게 사장에게 알리고 자신의 요구가 틀리지 않았음을 밝힘과 동시에 지난번에 덤으로 얻어간 물건은 이미 다 써서 돌려드릴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자신이 정당하는 것을 밝히는 것이다.

한편, 공주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공주의 사정을 듣고는 이를 애처로이 여겨 공주를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준다. 어머니같은 자비로움이다. 아니 어머니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자비로움이다.

이런 팽씨 아줌마의 정당한 자비로움에 공주는 스스로의 잘못을 가게에 가서 몇시간동안 일을 하고 팽씨 아줌마의 딸과 놀아주는 스스로의 노동과 노력으로 치유함은 물론 신뢰를 얻기까지 한다.

 

이 땅의 또다른 ‘소나기밥공주’이 없어지길 바라며

 

이 땅의 45만 또다른 소나기밥 공주는 없어져야 한다. 이는 아이들의 몫이 아니라 사회를 만들어가는 어른들의 몫이다. 어른들이 일어나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

45만 소나기밥 공주들에게 우리가 부모가 되어 밥을 차려주거나 공부를 돌봐주것부터 사회가 책임지도록 요구하는 것까지 어른들의 해결법은 여러 가지가 있고 복잡하다. 다른 사회문제들도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45만 소나기밥 공주들에게 체념하고 살라고 하는 것은 절대로 해서는 안된다. 이는 그간 우리가 저질러온 무책임한 짓의 반복이며 그들을 절망에 빠뜨리는 일이 될 것이다.

아이들은 우리들의 미래이며 우리가 책임지고 가꾸어야 할 꽃이다.

거기에는 소나기밥이든 설익은 밥이든 가릴 것이 없다. 그저 아이들을 믿고 아이들이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자양분을 제공하고 좋은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이 것이 어른들이, 사회가 나서서 힘써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