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도로프의 뜻은 무엇일까? 교육학자의 이름일까? 도시 이름일까? 교육과 연관된 중요한 단어일까?
발도로프는 담배공장 사장의 이름이다. 1919년 독일에 세워진 학교의 이름을 사장 이름을 따 발도로프학교라 지었고, 담배공장 노동자들의 자녀들이 다녔으며, 인지학의 창시자인 루돌프 슈타이너(Rudolf Steiner, 1861-1925)가 교육을 담당했다.
슈타이너는 한 아이가 태어나 교육이 필요한 시기를 태어나면서부터 20년이라고 정의한다. 이 시기는 크게 셋으로 나누어진다. 이가 교체되기까지, 7세에서 사춘기까지, 사춘기 이후다. 이가 교체되기까지 어린이들은 주위환경 속의 모든 것을 모방하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7세에서 사춘기까지는 권위있는 존재 하에서 알아야만 하는 일, 느껴야만 하는 것, 원해야 하는 것들을 배우려고 한다. 그리고 사춘기를 거치면서 서서히 자기 자신의 판단에 기초해서, 주위환경과의 관계를 가지려 한다. 발도로프 교육학은 아이들의 발달과정을 이렇게 정리하고 이를 기반으로 교육 방법을 체계화시켰다.
발도로프 교육에 관한 책은 한국에도 많이 나와 있다. 그러나 슈타이너는 심오하면서도 복잡하게 기술하고 있고, 한국에 들어온 책들도 번역이 한국 사람들 입맛에 맞지 않게 되어 있어 깊이 이해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는 편이어서 발도로프 교육이 무엇인지 경험한 몇 가지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발도로프 교육을 통해 무엇을 배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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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도로프 학교 12학년 학생이 만든 흔들의자. ⓒ 전미선 |
발도로프 교육의 핵심은 아이들이 자연을 접하며 살아가는데 필요한 감각과 기술을 습득케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가 본 4곳의 발도로프 교육기관 모두가 도심이나 근교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학교 안으로 들어가보면 너른 흙마당에 나무와 꽃이 자라고, 나무 그네, 단순한 나무 놀이기구 등이 있다. 7살에 입학하여 12학년제로 운영하는 대부분의 학교는 근교에 작은 농장을 운영하여 4학년 이상의 아이들에게 직접 밀농사를 짓게 하고 다 자란 밀을 직접 갈아 즉석에서 빵을 구워먹을 수 있는 시설을 갖춰 놓고 있다.
발도로프 학교는 학교 안에 있는 자연재료를 갖고 의식주에 필요한 모든 것을 자립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가르친다. 양모를 갖고 실을 만들고 그것으로 옷을 짓는 전 과정을 세심하게 배운다. 나무를 깎아 수저를 만드는 것을 시작으로 장난감, 옷장, 의자, 악기 등 사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장인에게 직접 배운다. 그리고 자연재료로 만든 악기인 나무리코더, 바이올린은 기본으로 익히게 된다. 손가락을 통한 노동을 실생활에 필요한 것을 중심으로 하나하나 익혀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교육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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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기 수업 작품들. 알파벳 하나를 배우는데 최소 이틀이 걸린다. 선생님이 알파벳을 이미지화할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아이들은 그림으로 표현하고 그 그림속에서 알파벳 형상을 찾은 후, 마지막에는 크레용으로 완성된 알파벳을 쓴다. ⓒ 전미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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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에서 선생님이 들려준 이야기를 듣고 그린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 전미선 |
여기에 학생, 학부모, 선생님이 이 교육과정에 가장 저해요인으로 작용하는 텔레비전, 컴퓨터 등 매체에 대한 접근을 일정한 나이까지 가능한 막는다. 인간이 인간에게서 배워야할 것을 매체를 통해 접하게 되면 모방학습 감성, 언어, 사회성 등등 모든 발달에 혼란을 초래하여 교육의 효과가 현저히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한 선생님은 “학교 내에서 텔레비전을 본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의 차이가 아주 잘 나타난다”고 한다.
아이들의 발달 과정에 맞추어진 교과과정은 12년 동안 그림과 음악, 손과 몸의 움직임으로 언어와 수학을 중심으로 시작해서 고학년이 되면 과학, 지리, 역사 등 논리적인 탐구 과정을 익히게끔 수업이 짜여 있다. 그리고 오이리트미라고 하는 몸동작 수업이 있는데, 문자 등을 몸의 움직임을 통해 아름다운 선율에 맞춰 춤처럼 표현하는 것이다.
아이들의 성장에 필요한 최적의 조건은?
난 내가 일하는 곳의 아이들은 가정과 학교, 그리고 아동센터가 생활의 중심이다. 아이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순서는 가장 먼저 가정, 그 다음 학교, 그리고 마지막으로 센터가 된다. 센터에서 즐거운 아이도 가정과 학교에 가면 풀이 죽어지내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소식을 접할 때면 난 언제나 내 일에 회의를 느꼈었다. 센터에서 아이들의 성장발달에 좋은 환경을 만든다 해도 아이들은 당장 자신들의 삶에 아주 작은 일 수밖에 없고 그것이 미래에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가라는 회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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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마다 목공실, 도자기실, 방직실 등이 전문적인 도구를 갖춰 마련되어 있다. ⓒ 전미선 |
이런 고민을 발도로프 선생님께 털어놨더니, 했던 말은 아이들이 받은 모든 기억은 체득되어 미래에 언젠가는 나타난다고 했다. 가정과 학교의 나쁜 기억 이면에 좋았던 어떤 기억이 단 하나라도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런 좋은 기억을 담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이들 주변에 있는 어른들의 몫이라고 한다. 이처럼 발도로프 교육에서는 특히 모방학습을 하는 시기와 어른의 권위를 갈구하는 15세 이전까지의 시기에 아이가 발랄하게 있을 수 있도록, 생기없이 메말라 버리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나는 나름대로 발도로프 교육이 아이들의 맑은 영혼을 지켜주며 교육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열심히 그 답을 찾아 다녔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순간까지 정리된 것은 다음과 같다.
평등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유롭게 상상력을 키우는 것,
노동을 통해 창조성을 배우고
과학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하는 것,
이를 통해 자립적이고 창조적인 인간으로 자라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