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와 아이
수업을 마친 3시 45분.
아이들이 학원으로 집으로 빠져 나간 교실은 춥다.
봄이라고 하지만 아직 3월 중순이기도 하고 비 온 후라 그런지 날씨가 쌀쌀한게 꽃샘추위가 시작되려고 한다.
내일 수업 준비로 이것저것 보고 이곳저곳 들러보고 있는데 우리에서 가장 조용한 아이가 헐레벌떡 교실 뒷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 조용히 내게 봉투를 내밀었다.
"선생님! 엄마가 선생님드리라면서 싸주셨어요.우유랑 고구마예요"
"어머 그래요."
나는 순간 고민했다. 예전처럼 돌려보내야 하나 아니면 반갑게 받아야 하나.
고민은 깊었지만 판단은 짧았다.
"그래요. 선생님 고구마 너무 좋아하는데... 너무 고마워요"
아이의 얼굴은 금방 환해졌다.
내게 선물을 건낸 아이는 미소를 머금고 교실을 나갔다.
신문지로 쌓여진 고구마를 만졌다. 집에서 학교까지 오면서 식었을 만도 한데 따뜻한 걸 보니 고구마를 찧은지 얼마되지 않은 모양이다.
고구마를 까서 한입에 먹었다.
아이의 마음이 느껴져서일까 더 맛있었다.
일처리를 하다가 교실에서 나가려는데 아이가 복도 의자에 앉아있었다.
" 왜 거기에 앉아있어요? 교실에 있던지 앞에 교실에 들어가지.."
그 아이에게는 핀잔처럼 들렸을까? 고개를 숙인 체 허겁지겁 교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 일을 마치고 교실에 들어왔을 때는 아이는 교실에 없었고 신문지 위에 고구마와 우유만이 남아있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이의 집은 그리 넉넉하지 않은 것 같다.
맞벌이를 해도 먹고 살기 팍팍한데 아이의 집은 아버지만 벌이를 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평상시 다른 친구들에게 말을 건내지 못한다. 새학기가 시작된지 3주가 되었지만 지금까지 아이가 말을 걸어보거나 말을 해본 사람은 2명뿐이다. 아이는 다른 아이에게 말 거는게 힘들다며 "친구들에게 다가 말을 걸어보라"는 내 제안에 고충을 토로했다.
아이를 좋아하는 아이도 없지만 싫어하는 아이도 없다. 친한 친구가 누구냐는 물음에 4학년에 어울렸던 친구의 이름을 말했다.
그 아이는 작년에 내가 가르쳤던 아이이기에 잘 알 수 있었다. 그 아이 역시 말은 적지만 묵묵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착실히 해내는 아이였다. 유유상종인가? 둘다 말은 없지만 참 성실한 아이였다.
우리반 아이는 오늘 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나를 위해 애를 쓰곤 했다.
지저분해진 내 자리를 정리해주기도 하고, 조금 피곤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으면 언제 곁에 왔는지 모르게 뒷목을 주물러 주거나 안마를 해줬다.
참 짧은 순간이었지만 임길택 선생님이 쓴 '들꽃아이'의 보선이가 생각났다.
선생님을 위해 먼길 마다않고 예쁜 꽃을 따온 보선이 말이다.
그 보선이가 지금 내 앞에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찡해져왔다. 행복했다.고마웠다.
보선이와 같은 아이를 학급에서 만날 수 있다는게 교사로서 참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반에 있는 보선이를 어떻게 만나야 할지 앞으로가 더 기대가 된다.
부디 나의 이런 마음이 변하지 않고 늘 고마워하고 행복해하며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