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날에 만난 이웃
아내의 1주일 휴가가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 도서관에 가기로 했다. 집 창틀에 쌓인 눈이 심상치 않아 골목이라고 쓸어 볼 마음으로 ‘먼저 나가 기다리겠다’라고 했다. 대빗자루를 들고 쓸기 시작했다.
4살된 아들과 나오느라 조금 늦게 나온 아내가 보기에도 만만치 않았나보다. 도서관에 가는 걸 포기하고 아내도 함께 눈을 쓸었다.
20분정도 쉼없이 쓸자 이마에 땀이 흐르고 안경은 뿌옇게 됐다.
동네 골목길을 치어볼 마음으로 주변을 보았지만 무릎가까이 쌓인 눈을 혼자 쓸기란 쉽지 않았다.
그 때 벙거지 모자 쓴 나보다 어린 청년이 다가와 빗자루를 빌려달라고 했다.
알겠다고 대답했다. 젊은 청년은 동네에서 오래 살았는지 옆집사람들과도 이야기를 나누며 기다렸다.
계속 쓸어도 줄지 않는 눈에 젊은 청년에게 말했다.
“옛날처럼 눈가래가 있어야겠는데요.”
“그렇죠.” 하면서 옆 공사장으로 갔다. 그냥 서있기가 뭐해서 따라갔다. 젊은 청년은 공사장 근처에 쌓여있는 널빤지며 긴 막대기를 이것저것 만지기 시작했다.
“공사하는 것 같아서 건딜지 못 하겠더라구요.”
“급한데 이것저것 따질 겨를 있나요. 그냥 쓰고 보는 거지. 잠시만 기다리세요. 제가 금방 만들어서 가져올께요.”
나는 젊은 청년을 기다리며 공사장 주변에 떨어져 있는 작은 널빤지를 들고 동네를 치웠다.
5분이 지났을까 청년은 눈가래 2개를 들고 나타났다.
“그럭저럭 쓸 만할 겁니다.”
“그럼 저는 라동쪽을 쓸테니 선생님은 나동쪽을 쓰세요.”
간단한 목인사와 함께 각자의 골목으로 헤어졌다.
눈가래 하나로 빠르게 사라지고 차들이 다닐 수 있는 길이 드러났다.
“정말 고마워요. 눈가래 아니였으면 정말 힘들었을텐데”
“아뇨. 뭘... 여기도 우리가 사는 곳인데요.”
“치우긴 치웠는데 눈 옆에 저 차들은 며칠 동안 못나가겠는데요.”
“어쩔 수 없지요. 뭘.... 사람이 먼저지 차가 먼저인가요. 저도 화물차몰아요. 저 옆에 차보이시죠. 제가 모는데 당분간은 글렀어요.”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눈이 계속 오면 저녁먹고 한번 더 나와야겠어요.”하며 동참을 권했다. 나는 흔쾌히 그러마 하고 집으로 들어와 같이 눈을 치던 젊은 청년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와 대단하다. 그 사람. 그런 생각갖기 쉽지 않은데...”하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젊은 청년에 대한 칭찬했다.
기록적인 폭설로 눈 치는 문제로 옆집사람들과 말싸움도 하고 몸싸움도 했다는 기사가 신문에 실렸다.
어디에서 있었던 일인가 싶어 자세히 보니 대한민국에서 잘사는 걸로치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강남의 한 주택가에서 벌어진 것이다. ‘사람들 참 못났다’ 싶었다.
그들에 비하면 10분에 1도 되지 않는 주택가에 살지만 ‘이곳에 살기 정말 잘했다’ 싶었다.
아직도 눈은 녹지 않았다. 그 빠른 전철까지도 20분 이상 늦는 것은 다반사다.
하지만, 우리 동네 골목은 눈 걱정없이 편하게 걸을 수 있다.